리모컨을 멈추게 하는 영화
영화 '광해'는 영화관에서도 재밌게 봤었지만, 한 번씩 TV에서 방영해 줄 때가 많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광해가 방영되고 있으면, 여러 번 보았음에도 다시 보게 하는 매력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만의 픽션이긴 하지만, 흥미진진하고 뻔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와 극 중 배우들의 몰입도 있는 연기가 관객을 이끄는 힘을 가진 영화 인듯합니다. 영화는 광해왕의 격동기였던 가장 중심적인 시기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하늘아래 두명의 왕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독살위협을 받는 광해군은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폭군의 모습을 보입니다. 매일 먹는 밥상과 음식조차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광해군은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의 대역을 구해오라는 명을 하게 됩니다. 허균은 우연히 기방에서 가장 재능 있는 광대를 보게 되는데, 그 광대의 모습이 광해군의 외모와 똑같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똑같은 외모와 남을 따라하는 능력을 가진 광대 하선이 왕의 대역으로써 적임자라고 생각하여, 궁으로 데려와 왕으로써의 역할을 시키며 말투, 목소리, 행동을 모두 똑같이 따라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광해군이 독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산속 절에 몰래 치료받는 왕을 대신하여 하선은 궁에서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백성의 편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하선은 진정한 왕의 자질을 갖추어 통치하였고, 하선의 자질로 가까운 신하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이나 입맛 등 왕을 측근에서 모시던 궁녀들과 신하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고, 하선이 왕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반란군이 궁에 들이닥쳤을 때는 이미 진짜 왕이 복귀한 상태였기 때문에 반란은 일단락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었지만, 가장 큰 비밀을 알고 있는 하선을 광해군은 죽이라 명하고, 하선을 정말 진심으로 왕으로 모셨던 도 부장의 희생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하선이 무사히 도망가 배를 타고 떠날 때 부두에 있는 군중들 속 도승지 허균이 왕에게 인사하듯 배웅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선을 구박하고 가르치려 하였지만 자신또한 민심을 살피는 하선의 왕다운 모습에 하선을 왕으로써 모시고 배웅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진정한 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왕이었으면 하지 못했을 일들을 파벌과 내정과는 관계없이 오롯이 백성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성장하는 하선의 모습에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
후궁의 아들이었던 조선왕조 15번째 왕 광해왕은 왕으로써 끊임없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대립의 논쟁거리였습니다. 광해왕은 재임기간 동안 나라 내부적으로는 파벌 논쟁이 극에 달아 시끄러웠고,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와 병자호란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왕위에 올랐던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나, 당쟁에 휘말려 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무리한 궁궐 복원공사를 강행하게 되며 백성들의 민심도 잃었고, 그 시기 측근들의 월권과 부패가 문제 되면서 궁궐 복원 과정에서 자금문제도 심하였다고 합니다. 또,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던 일로 연산군에 이어 조선왕조 중 반정으로 인해 폐위된 두 번째 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측근들의 권력남용과 비리가 반정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명분을 주었던 것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은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인 선조를 대신하여 궁을 지키며 전란을 수습했던 인물로 세자로써의 위치를 굳혔었지만, 명나라의 세자책봉 승인 반대와 선조의 심한 경계로 왕이 되는 과정이 평탄치는 못하였다고 합니다. 반정 이후 패륜의 군주로 규정되어 있던 광해군은 폭군이자 어리석은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광해군의 실리외교와 중립외교에 관련하여 긍정적인 평가가 현재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부 재평가되고 있으며, 내부적인 나라실정붕괴로 소극적인 외교를 펼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었다는 점도 감안되어 평가받고 있는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