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만은 않은 판타지 영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 작품이자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관을 가진 영화로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한 번 보고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철학적인 의미가 가득 담긴 영화입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색채와 아름다운 세계관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하였지만, 다시 보는 영화 속에서의 감독이 담아낸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사랑과 희생을 담아내고 있어 아름답지만 씁쓸하기도 한 독창적인 예술영화입니다.
하울의 심장이자 마음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여자주인공 소피는 집안의 장녀로서, 묵묵히 모자를 열심히 만들며
퇴근 후 빵집을 찾아 골목을 헤매는 소피에게 군인들이 치근덕거리게 되는데, 그때 하울이 나타나 군인들에게서 소피를 구해줍니다. 하울은 자신이 현재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니 일행인척 같이 걸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황야의 마녀가 보낸 마법의 형체에게 쫓기게 되자 하울은 소피와 함께 하늘을 거닐며 날아오릅니다. 해당 장면이 클라이맥스가 아닌 영화 초반의 장면인 거에 비해 ost와 함께 가장 유명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날밤, 소피의 모자가게에 황야의 마녀가 와서 하울의 행방을 묻고, 무례하게 구는 황야의 마녀를 쫓아내려 하자 마녀는 소피에게 오히려 늙은 할머니가 되는 저주를 내리고, 저주를 풀고 싶으면 하울에게 가보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납니다. 90세의 할머니가 된 소피는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마법사들이 거주한다는 계곡으로 떠나게 되고, 가던 길에 위험에 처한 움직이는 허수아비를 만나 하울의 성으로 안내를 받게 됩니다. 외관이 고철덩어리로 엉망인 것 같은 하울의 성을 찾아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벽난로에 있는 작은 불의 악마 캘시퍼와 하울의 제자 마르클 만납니다. 캘시퍼는 하울이 어린아이였을때 계약을 맺어 하울의 심장을 가져간 악마이며, 하울의 성을 움직이는 동력원입니다.
할머니가 되어 하울의 성의 청소부로서 일하는 소피는 하울의 성의 신기한 4가지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을 보게 되고, 그중 검은 문으로 나간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고 불에 타고 있는 도시가 펼쳐져있으며 전투기들만 있는 전쟁터입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국왕의 부름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겁이난 하울은 그를 따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고, 하울을 찾는 국왕과 하울의 심장을 노리는 황야의 마녀에게도 쫓기는 신세였습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 사는 하울은 아마도 몸만 자란 어린아이가 아닐까요. 그런 전쟁과 마녀를 두려워하는 하울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된 소피가 하울의 엄마인척 국왕의 마법사 설리먼을 만나 하울을 벗어나게 요청을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설리만은 소피를 공격합니다. 소피를 도와주던 하울이 겁에질리고 자신을 혐오하며 악마로 잠식되자 구해주는 소피. 전쟁이 절정에 이르자 설리만은 더욱 하울을 찾으려 몰아붙이고 응석받이 겁쟁이 아이 같던 하울도 소피를 위하여 전투에 참여하며, 전쟁 때문에 점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하울을 살리고자 소피는 하울의 성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잃어가는 하울을 살리고자 하울의 과거로 들어가게 되고, 과거 캘시퍼와 하울이 심장을 거래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캘시퍼와 하울에게 걸린 저주를 이해하고 부상과 악마와의 계약으로 죽어가는 하울에게 캘시퍼를 주면서 살리게 됩니다. 하울, 캘시퍼가 살아나고 소피의 키스로 마법이 풀리게 되는 허수아비도 이웃나라 왕자로 돌아오는데, 그 왕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하고 떠납니다.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 상실, 그리고 개인의 성장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기 하야오의 다른 작품들처럼 거창한 이야기들보다, 한 인간의 정서적 성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복된 일상에서 장녀의 책임을 다하며 수동적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소피의 모습이 지금 현대사회의 평범한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노파가 된 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 하고 두려움 없이 모두에게 맞서며, 독립적으로 변하는 소피의 모습은 눈에 띄게 개인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황야의 마녀가 계속해서 하울의 심장을 원해서 찾아다니는데, 그것은 실제 계약된 하울의 심장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울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화 끝무렵 젊은 마법이 풀려 할머니가 된 황야의 마녀가 다른 특별한 이유 없이 하울의 심장을 집착하는 부분에서도, 단순히 하울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게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하울의 심장을 돌려줄 때 캘시퍼가 죽지 않았던 이유도 하울의 마음이 소피이게 있었기 때문에 캘시퍼와 하울이 분리되더라도 죽지 않고, 자신의 심장이자 즉 자신의 마음을 찾게 되는 하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을 잃어가며 고통받는 괴물이 되어가는 하울, 그런 하울을 꺼내어주며 자신또한 성장하는 소피를 보여주는데,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인 성을 소피가 청소하는 점 또한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주가 걸렸음에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입 밖으로 표현할 때 잠시 젊은 소피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 또한 소피의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단순히 소피와 하울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주인공들의 여러 시점과 마음에서 보면 여러 번 봐도 새로워 보이는 영화입니다.